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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코로나19에 묻힌 이들립의 비극(3/10)
작성자 정치외교학과조회수 56날짜 2020.03.11

내일신문 2020310일자

코로나19에 묻힌 이들립의 비극
 
열린 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동안, 시리아 북부의 닫힌 전쟁터 이들립에서는 민간인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아랍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반()독재 투쟁이 시작되어 내전으로 악화된 것이 2011년이니 벌써 10 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시리아라는 나라는 피폐해지고 경제는 몰락했으며 수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은 지구촌의 멸시와 홀대를 받으며 세상을 떠돌고 있다.
현재 이들립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 세력이다. 한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IS는 이제 이들립으로 집결하여 최후의 항전을 벌이는 듯하다. 문제는 IS의 종말이 아니라 이들립 지역에 집중된 독재에 맞서 싸워온 시민들이다. 3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성향은 다양하지만 정부군의 포위망이 조여 오는 동안 모두 이들립으로 피난하여 집결한 결과다. 이슬람국가가 통치하는 지역이라고 주민이 극단주의 전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립을 놓고 실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시리아 정부군과 이슬람국가 군대이지만 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은 러시아와 터키다. 러시아는 거의 무너져 가는 아사드 정권을 도와 내전의 향방을 바꿔놓은 세력으로 여전히 정부군을 지원하는 군사적 대부(代父)이자 외교적으로 시리아를 보호하는 방패다. 지난 달 28일 폭격으로 터키 군인 3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시리아와 러시아, 어느 국적의 제트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군의 시리아 개입은 깊숙하다. 러시아와 시리아는 피의 동맹이지만, 이들립을 접수하여 전국을 평정하려는 아사드 정권과 국제적 파장을 고려하여 이를 통제하려는 러시아의 계산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들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는 아사드 정권의 공격으로 파생될 대규모 난민의 행렬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최우선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터키에는 이미 3백만 명이 넘는 난민이 살고 있으며, 이들립이 무너질 경우 다시 수백만이 몰려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터키는 시리아의 공격을 받은 뒤 즉시 반격했고 그로 인해 시리아 측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내전이 터키와의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터키 에르도안과 러시아 푸틴은 모스크바에서 만나 휴전을 합의했다.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서로 각각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터키와 러시아의 공존은 양측에 모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터키는 난민 부담을 들어 유럽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들립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이나 나토가 비행금지구역을 운영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동시에 추가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유럽이 함께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2015년 난민 사태 이후 터키는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유럽행 시리아 난민의 행렬을 막고 자국에 머물게 하는 정책을 펴왔다. 군사행동이나 경제지원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에 유럽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난민 이동을 굳이 막지 않겠다는 태도다. 10일 유럽연합과 터키 정상회담의 의제다.
이들립에 집결된 3백만의 시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고향을 등진 난민들이다. 타향에서 이슬람국가와 같은 무자비한 세력의 지배를 받는 것도 고통인데, 아사드 정부군이 이들립을 점령하면 이들의 운명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빠질 것이다. 자국 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정권이 아니었던가. 주변 강대국 러시아와 터키에게 이들립 주민은 자국 세력을 확산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한낱 바둑알일 뿐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내칠 수 있는 국제정치 게임의 바둑알 말이다. 평소 인권과 인도주의의 노래를 부르는 서방의 미국과 유럽도 난민 처리를 에르도안과 같은 독재자에게 하청하면서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17년 전 중국인들은 사스를 피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TV를 통해 감상했다. 2020, 열린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마스크 대란을 벌이는데 폭격을 맞으며 바로 앞 미래도 알 수 없는 닫힌 세계 이들립의 3백만 주민은 속수무책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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